행복이 머문 자리/:: 추억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첫 만남(1)

셜록_o 2021. 5. 22. 00:01

쌀쌀한 늦가을 바람이 불던 2013년 11월, 부산에 사는 여자와 서울에 사는 남자가 만났다.

2013년 부산, 여느 때처럼 뜨거웠던 여름 어느 날, 얼마 전 서울로 이사를 간 친구와 부산에 있는 또 한 명의 친구와 나, 이렇게 여자 셋. 우리끼리 속닥속닥 얘기 나누던 메신저 채팅방이 있었다. 그날은 서울로 이사를 간 친구가 동갑 남자 친구가 생겼다며 자랑을 한 날이었다. 서울로 올라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그 친구의 깜찍한 고백에 우리들의 채팅방은 오랜만에 왁자지껄 해졌다. 그 틈을 타 그 친구는 자기 남자 친구를 우리 채팅방에 초대했다.

 

나와 다른 친구가 미처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그 친구의 남자친구는 우리들의 채팅방에 순식간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당황했다. 초대가 된 친구의 남자 친구는 상큼한 자기소개와 함께 자기 친구들도 초대해도 되겠냐며 일사천리로 자기 친구들을 우리의 채팅방으로 초대했다. 어머나, 갑자기? 어느새 우리 여자 셋이서 얘기 나누던 채팅방이 남자 셋, 여자 셋으로 채워졌다. 윽..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게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고 눈 깜짝할 새에 3 : 3 랜선 미팅처럼 분위기가 흘러가버렸다. 그게 싫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앙큼한 커플이 미리 계획했던 일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전 연인과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고 나의 소중한 20대 후반, 혼자로 돌아온 그 행복하고 자유로운 시간에 잘 알지도 못하는, 하물며 멀다 멀다 서울 남자? 그리고 뭐?? 랜선 미팅?? 그 현실적이지 못하고 강제적인 이 상황이 정말 싫었다. 그뿐인가 6명이 되어버린 채팅창은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이야기보따리들과 서로서로의 이야기들로 순식간에 왁자지껄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순간을 놓치면 무슨 대화를 하고 있었는지 한참을 화면을 올려봐야 알 수 있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내 친구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이 새로웠고 재밌었지만 약간은 버거웠다.

그래서 나는 여자 셋의 오랜 수다방이었던 그 채팅방을 나가기로 했다. 


나의 스릉스르은 친구가 그 방에 나를 다시 그 채팅방으로 초대했다. 나가는 건 내 맘대로 되지만 다시 초대당하는 건(?) 내 맘대로 거절이 안됐다. 생각지 못한 변수였다. 오 신이시여.. 몇 번을 나가기, 초대당하기를 반복한 끝에 나는 나름 순순히 포기하고 그 채팅방에 유령처럼 거주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어이없었지만 뭔지 모르게 웃겨서 자연스럽게 넘어가 줬다. 어느 순간 알았다. 나 말고도 상대편 남자 중 한 명도 인사 한마디 한 후로 전혀 움직임이 없다는 걸, 

 

'음. 저 남자도 이런 상황이 꽤나 불편한가 보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나 홀로 그에게 동지의식을 느꼈다. 외관적으로는 3 : 3이지 어느 순간부터는 2 : 2 대화 체제로 이루어지고 눈으로만 채팅방에 임하던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자연스럽게 말없던 우리 둘에게로 화두를 옮겼다.

 

'너랑 너는 왜 말이 없냐, '

'앗 들켰다.'


핸드폰을 붙잡고 이리저리 눈치만 보던 나는 일 핑계를 댔고 그 남자도 여행 중이었다며 친구들의 의심을 피해 갔다. 그 남자는 홀로 제주도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주도의 멋진 풍경을 직접 찍어 보내주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남자가 보내오는 제주도 사진이 너무 좋았다. 홀로 한라산 등반을 했고 한라산 정상에 올라간 본인의 사진도 채팅방에 올렸는데 오 꽤 잘생긴 남자였다.  


꽤 오랫동안 이 채팅방은 뜨거웠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커플 남녀와 처음부터 서로의 이상형이라며 통했던 남자 2와 여자 2, 그리고 조용히 관망만 하던 나랑 그 남자도 소소한 일상 대화들과 생각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뭔가 커플들에 끼어있는 느낌이 들어 민망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가뜩이나 말도 없었던 나는 더더욱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 대화방을 나가지?'

 

그렇게 나 혼자 정한 이 채팅방에서 나가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제주도 여행 중이던 그 남자가 남은 친구들에게 대뜸 얘기했다.

 

"나는 이 친구랑 따로 대화하고 싶어. 우리 둘이 따로 대화할라니까 우리 둘 다 이 방에서 나간다."

띄용. 그 순간 뜬금없이 '파리의 연인'에 나오는 박신양이 생각났다.

 

"애기야 가자"

반응형